정병설(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혜경궁 홍씨1735∼1815는 열 살 어린 나이에 사도세자의 부인이 되어 궁궐로 들어갔다. 스물여덟 살에 남편이 부왕에 의해 뒤주에 갇혀 만 7일 만에 죽었다. 마흔두 살에 아들 정조가 즉위했고, 예순여섯 살에는 손자 순조가 임금이 되었다. 혜경궁은 환갑이 지나고나서 칠십 대에 이르기까지 세 번에 걸쳐 자기가 겪은 일을 썼다. 이것이 나중에 『한중록』으로 묶였다. 아래 글은 『한중록』을 토대로 하여 가상적으로 꾸민 것이다.
정선생, 고맙네. 내 이제 편히 눈을 감겠네. 인간 만사 죽고 나면 그만인데, 난 어찌 죽은 후에도 비방이 그치지 않는지. 내 겪은 일을 멀리서라도 한번 본 일도 없는 놈들이, 어디서 한 마디 말, 한 구절 글만 보고는, 날 놀리고 욕하니 억울하기 그지없었네.
이번에 자네가 번역한 『한중록』은 내게 큰 위안이 되었네. 물론 자네도 내 말을 전적으로 믿으려고 들지는 않았지. 암, 그래야지. 자네는 학자니까. 하지만 여러 자료를 견주어 보면서 결과적으로 내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었으니 나로서는 고마워. 자네도 연구해봐서 알듯이 내가 쓴 『한중록』에 거짓이라고는 없어.
시중의 전후 사정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도세자의 죽음을 두고 노론의 음모라고도 하고, 또 내 친정이 노론이니 내가 남편을 죽였다고까지 말하더군. 『한중록』은 내가 잘못을 변명하기 위해 꾸민 거라고 하고. 기가 막힐 노릇이야.
물론 내 친정과 노론을 위하는 마음이 작지는 않아. 맞아. 하지만 그렇다고 음모를 꾸몄다는 것은 말도 안 돼. 내 뭐가 아쉬워 음모를 꾸미겠나. 내 아들, 손자가 모두 임금인데, 내 몸에서 조선의 권력이 모두 나왔는데, 내가 뭐가 아쉽겠나. 음모는 힘없는 자들, 힘을 잃은 자들이나 하는 짓이지.
다만 『한중록』에서도 말했듯이 차마 말할 수 없는 일들은 숨기기도 했고, 또 부모, 친지를 위하는 마음에 작은 과오는 굳이 말하지 않았지. 고백록이 아닌 다음에야 잘못만 골라 시시콜콜 말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건 자네도 잘 알지?
자네 오늘 내 얘기를 듣고자 왔네만, 내 겪은 일이야 이미 『한중록』에 다 적었고, 또 하나하나 말하자면 밤을 새워도 끝맺기 어려워……
열 살 때 세자빈으로 궁궐에 처음 들어왔을 때 본 그 삼엄한 궁궐 풍경. 남편의 병증이 갈수록 심해지자 늘 불안하고 안타까워했던 일. 홀로 정조를 키우며 아들도 아버지처럼 죽지 않을까 염려하던 일. 친정아버지가 반대당의 공격으로 위태롭게 되어 마음 끓이던 일. 작은아버지가 사약을 받고 죽던 일. 동생이 조카인 정조 임금 앞에서 머리 풀고 죄인으로 심문 받던 일. 이장한 남편의 무덤으로 가 수원 화성에서 성대한 환갑잔치를 벌인 일. 아들 정조의 돌연한 죽음과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동생 낙임이가 제주도에서 사약을 받아 죽던 일……
내 권세가의 딸로 세자빈이 되었고 사실상 대왕대비 노릇까지 했으니 누가 내 팔자를 부러워하지 않을까마는 실제로는 나만큼 고통을 많이 당한 사람도 없을 걸세.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는지 모르지. 끈을 만지며 목 멜 궁리도 하고, 칼을 쥐고 스스로 찌르려고도 하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밥을 끊고 죽으려고도 했지. 그렇게 자살 시도를 많이 했는데도 죽지 않더군. 정말 목숨이 얼마나 질긴지.
지금 세상 사람들이야 날 사도세자의 부인, 남편을 죽인 냉정한 부인으로 알지만, 그건 정말 터무니없는 말이야. 세상에 멀쩡한 남편이 죽기를 바라는 부인이 어디 있으며, 전도유망한 사위가 죽기를 바라는 처가가 어디 있겠나. 사도세자가 노론을 적대시하는 바람에 노론 측에서 죽였다고 하지만, 사도세자가 설령 그랬다 해도 우리를 적대시할 이유가 무엇인가. 사도세자가 노론을 싫어하긴 했지만 사도세자가 노론 전체를 싫어한 건 아니야. 일부 세력이지. 그 세력은 우리 집안도 공격했어. 자네는 누군지 알겠지. 공홍파攻洪派 말이야. 우리 홍씨 집안을 공격하는 파벌이라고 해서 이런 이름까지 붙었지. 냉정히 말하면 나나 우리 친정이나 사도세자의 덕을 볼 사람들인데, 우리가 무슨 이유에서 사도세자를 죽였겠나.
사도세자가 죽음에 이른 경과에 대해서는 이미 『한중록』에 자세히 적었지. 그래도 한동안은 날 의심해서 『한중록』을 믿지 않는 학자들이 많았지. 이제는 다른 자료들이 자꾸 나와 내 말을 뒷받침하니 대부분 내 말을 믿지만. 학자들이 믿고 안 믿고야 내 개의치 않네만, 사도세자에게 깊은 병이 있었다는 것은 당시 세자 주변에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야. 정조도 알고, 나중에는 영조도 알았고. 다만 최고 권력자인 세자의 병이라서 누구도 표 나게 말을 못했을 뿐이지.
이제 와서 누굴 탓하겠냐마는 사도세자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내게도 고통과 불안의 연속이었어. 사도세자는 죽기 얼마 전부터 주위의 시종들을 계속 죽였고, 나중에는 아버지 영조까지 죽이겠다고 큰소리로 공언을 했지. 사도세자의 이런 행동이야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한 일이니 꼭 죄라고 할 것은 없지만, 이로 인해 나는 물론 우리 친정까지 어떻게 될지 몰라 내내 불안했네. 내 이런 말까지야 차마 어찌 하겠냐만, 속으로는 사도세자가 그냥 혼자 조용히 죽기만을 얼마나 바랐는지 모르네. 우리 친정도 마찬가지고. 그런 점에서는 나나 우리 친정이나 마음으로는 사도세자를 죽였다고 할 수도 있지.
내 오늘 작심하고 얘기를 꺼내려고 했는데 가슴이 막혀 도저히 더 못하겠네. 이백 년도 더 된 옛일이건만 처음부터 목이 메는군. 자네야 이미 『한중록』을 잘 읽어서 내 사정을 잘 아니, 자네가 내 얘기를 정리해주게. 자네만큼 내 속을 잘 아는 사람도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