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내 고향은 충청남도의 외진 산골동네 청양이다. 십대 이전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 가면 간혹 읍내에서는 듣기 어려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손님 여럿이서 찾아오시면 사랑방 할아버지께서는 그분들과 돌아가며 시조창을 하셨고, 혼자 계실 때에는 고소설 책을 읽으시곤 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할아버지는 그때 『숙영낭자전』을 즐겨 읽으셨다. 약간 쇳소리가 나는 카랑카랑한 할아버지의 낭송 소리는 문밖에서 들으면 감미로운 음악처럼 들렸다. 소설도 시도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입으로 낭송하고 귀로 듣는 것임을 나중에 알았으나 어릴 적 할아버지를 통해서 벌써 체험하였다. 큰댁 장지문에는 정철의 시조가 쓰여 있었다. 제사 때마다 절을 할라치면 눈앞에 걸리는 것이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기기란 다 하여라”라는 글귀였다.
내가 어릴 적 본 몇 가지 장면은 이른바 고전이라고 부르는 작품을 옛날 스타일로 즐기던 마지막 모습일 것이다. 그런 것이 우리 고전을 즐기는 전통적 방법이었다. 이옥의 소설 「심생전」에서 심생이 담을 넘어 추녀 밑에 숨어 있을 때 “처녀가 나직한 목소리로 언문소설을 읽는 중이었는데 꾀꼬리 새끼가 우는 듯 낭랑하게 들려왔다”. 그 시절에는 사랑에 눈뜬 십대 청춘이 밤 새도록 읽은 것이 언문소설이었기에 이처럼 사랑 장면의 멋진 소품으로 등장했다. 그 작품들이 지금 우리에게 고전으로 행세하고 있다.
옛사람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작품을 지금처럼 눈으로 훑어보는 방식으로 감상하다보니 재미가 줄어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렇게 백 년도 채 되지 않은 감상법이 지금은 대세를 형성하였다. 그렇다고 옛날 분위기를 잡고 낭송하라고 권할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책을 읽는 동기도 목적도 수단도 모두 예전과는 다르기에 과거의 방법을 그대로 따르느니 지금에 맞는 각자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다만 현대소설이나 번역소설 읽는 것과는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 낭송을 시도해도 좋을 법하다. 그 맛은 눈으로 섭렵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내게는 우리 고전을 읽는 것이 직업이다. 지금껏 고전에 흥미를 잃지 않았고, 앞으로도 고전에서 재미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내 나름대로 고전을 흥미롭게 읽는 이유라면 이런 것들이 있다.
고전은 수많은 읽을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책은 분야와 종류가 다양하고 각 분야마다 엄청나게 많은 양서가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굳이 우리 고전만을 고집해서 읽을 의무는 없다. 다양한 책을 읽는 사람이 고전도 더 잘 읽는다. 고전은 필요와 욕구가 있을 때 읽어야 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 고전은 읽을 만한 가치와 흥미를 충분히 지녔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우리 고전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춘향전』을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다 안다고 느낀다. 그러나 귀로 흘려들은 것일 뿐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로 읽어보면 들은 것과 다르다.
나는 그동안 다양한 종류의 『춘향전』을 꽤나 읽었지만 『남원고사』에서 가장 큰 재미를 느꼈다. 여러 번 읽은 것임에도 여전히 독서 욕구를 자극한다. 어느 곳을 펼쳐도 상상력을 자극하고 한국어 구사의 재미를 느끼게 만든다. 춘향과 이도령이 이별하는 전후 대목은 멋진 표현이 중첩된다. “이전에는 뜨게 걷던 말조차 오늘은 어이 그리 재게 가노?”(이도령), “이별이 비록 어려우나 이별 후가 더 어렵도다”(춘향)처럼 음미하기에 좋은, 그야말로 고전적 표현들이 정말 많다. 감각의 참신함과 세련됨은 현대소설의 심리표현 이상이다.
고전은 한번 읽고 던져두기보다는 옆에 두고 가끔 빼어 읽는다. 내가 아끼는 책 가운데 몇 종을 꼽으면 『조선구전민요집』(김소운) 『시조문학사전』(정병욱) 『정본 시조대전』(심재완) 『청구야담』이 있다. 책 자체도 잘 만들어 소장하기에도 좋은 책들이다. 가끔 펼쳐 보면 무엇보다 읽을거리로서 재미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이 몇 종의 책만으로도 우리 정서와 정신의 큰 흐름을 짚어볼 수 있다. 어떤 때에는 현재의 삶이나 정서와 너무 다르기 때문에 흥미롭고, 어떤 때에는 현재의 그것과 너무 흡사하기에 흥미롭다. 이런 종류의 책은 여러 번 읽어도 싫증 나지 않는다.
우리 고전을 읽으면서 나는 다른 나라 고전과 견주어보기를 좋아한다. 특히 이웃나라인 중국, 일본의 작품과 함께 읽으면 재밌다. 우리의 시조와 일본의 하이쿠, 한시 가운데 절구를 견주어 읽으면 서로의 개성과 특징이 도드라져 보인다. 우리에게 시조는 너무 자주 접하다보니 오히려 무덤덤한 맛이지만 하이쿠나 절구와 함께 보면 그 맛이 새롭다. 소설이나 다른 산문 장르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부터 귀신 이야기에 흥미가 생겼는데 세 나라 고전을 함께 읽으면서 더 큰 재미를 느낀다.
아쉽게도 우리 고전은 현대인에 적합한 읽을거리로 제대로 변신하지 못했다. 특정한 고전을 제외하고는 일반 교양독자가 선뜻 읽을 만한 독서물이 많지 않다. 유명한 고전소설을 제외하면 그 종류가 얼마 되지 않는다. 번역된 외국 고전보다 더 읽기 어려운 것도 많다. 고전은 이끼가 낀 기념비가 아니다. 낡고 시대에 뒤쳐진 고전은 독서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고전이 무대에 등장한다. 지금 시대 새로운 독자에게 호소하는 감성과 지성으로 다가가 현대 독자의 인생에 의미를 던질 수 있는 고전의 목록이 새롭게 탄생하기를 기대한다.